0의 비너스

CHOI MAN LIN

2011-09-16 - 2011-10-16

최만린 - 시대를 비껴 빚어낸 생명의 응결체

“자연과 생명의 숨결을 흙에 담아서 마음의 울림을 빚었다.”-최만린

60여 년에 걸친 조각가 최만린(崔滿麟, 1935~ )의 창작활동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서정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외양의 장식은 물론 재료의 물성까지도 거부하면서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생명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식을 군더더기가 없이 담아내고 있다. 여러 연구자들이 밝혔듯이, 최만린의 작품세계는 1950년대 후반의 <이브> 연작에서부터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하는 <0> 연작에 이르기까지 조형적 특징에 따라 변화의 추이를 논할 수 있다. 이번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역시 이러한 추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조각 작품은 물론 드로잉에서도 일관되게 흐르는 작가의 예술의지를 중심으로 최만린의 작품세계를 기술하고자 한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 감춰진 생명성까지도 드러내고 싶어 했다. 작가가 말한 자연과 생명과 마음이 어떤 식으로 공명하는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성을 형상화해 나가는 작가의 노정을 살펴보자.

II.

최만린은 1954년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인체를 중심으로 한 서구 조각의 조형언어를 습득했고, 대학원에 다닐 무렵에는 앵포르멜 미술이라는 또 다른 형식의 서구 조형언어를 접했다. 최만린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계기가 된 <이브> 연작은 얼핏 인체와 앵포르멜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해 놓은 작품으로 보인다.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가늘게 약화된 인체 이미지는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 아래 있었던 유럽 전후세대들의 표현양식을 연상시키지만, 표면의 거친 질감 처리는 앵포르멜 미술의 조형적 특징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최만린은 청소년기에 서구의 실존주의를 운운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처참한 6・25전쟁을 겪었고, <이브>는 그 비극적인 전쟁 체험에서 배태된 형상이다. <이브 58>에서처럼 꽃이 아닌 가시덤불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은 여성 누드상에서 흔히 표현되는 인체의 아름다움이나 장식성과는 거리가 먼 형상으로, 전후세대의 의식 속에 내재된 시대적 고통의 표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최만린은 전쟁의 비극에 함몰되어 시대적 고통을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고통을 넘어서는 생명성을 구현하고자 했는데, 바로 이점에서 서구 전후미술의 세례를 받은 앵포르멜 작가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1956과 1957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전에 출품한 모자상에서도 생명성의 표현이 감지되는 바, 최만린은 전후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1965년 즈음, 최만린은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 보다 거시적 차원의 생명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브> 연작의 구상적 요소를 버리고 추상적인 작품으로 나아가면서 우주 만물의 원리 속에 내재된 생명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생명성의 표현과 관련해서, 얼핏 서양 현대조각사에서 허버트 리드(Herbert Read)가 논의한 바이탈리즘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허버트 리드가 말한 바이탈리즘은 자연의 생명에너지를 유기적 형태를 통해 표현한 경우인 데 비해, 최만린은 자연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속에도 내재된 생명성, 즉 만물의 근원이 되는 발생적 에너지로서의 생명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의식이 단번에 형상화되기는 어려웠기에, 그는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사색을 통해 이를 서서히 발전시켜 나갔다. 그 지난한 과정은 수많은 드로잉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작품들과 함께 드로잉이 전시되고 있어 작가가 자신의 내면의식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응축시켜 나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구상적 표현에 벗어나 추상으로 나아간 첫 단계로, <天>, <地>, <玄>, <黃> 같은 한자 연작을 살펴볼 수 있다. 한자를 조형화하는 작업은 1965년경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이전의 인체표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지만, 작가의 관심이 단지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는 조형의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최만린은 당시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양미학이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없고... 자생하고 뿌리내릴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우리의 것의 조형방법을 모색하던 시절”이었다는 회고로 유추하건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이러한 고민이 최만린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6・25전쟁 직후 서구지향으로 치닫던 젊은 작가들은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적인 것'으로 선회하면서, 전통적이거나 향토적인 모티프, 혹은 오방색 같은 조형 요소를 통해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거나 서양적 조형언어에 동양철학을 절충하는 식으로 '정체성 구축'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에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한국적 모더니즘,” 혹은 “한국적 미니멀리즘”으로 수렴되었다. 그러나 최만린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나 흐름에 직접 동참하지 않았다. 1950년대 말에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反국전 의식이 팽배했던 시절에도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직시했듯이, 그는 시대적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일관되게 자기 정체성 내지는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를 지속해 나갔다.
<천>, <지> <현> <황>에서 보이는 한자 형상화 작업은 이러한 정체성 찾기의 첫 번째 단계였다. 이 작업에서 최만린은 이전까지 드로잉에 사용했던 펜이나 연필을 버리고 모필을 선택했다. 현대작가들 중에서 서예나 모필의 가능성을 발견한 경우는 적잖다. 예컨대,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1910-1962)을 비롯하여 이응노(李應魯, 1904-1989)나 남관(南寬, 1911-1990) 같은 작가들은 순수조형을 위한 원천으로 서체를 차용했다. 최만린의 <천>, <지>, <현>, <황> 같은 작품 역시 서체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이지만, 그의 관심은 서체가 지닌 형상이 아니라 모필 그 자체였다. 그에게 모필은 펜이나 연필 같은 서구적 표현매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응축된 에너지와 氣, 생명의 숨결을 담아낼 수 있는 도구이자 “자연 그대로의 나,” “원초적인 자연”을 끄집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모필이 지닌 생명성에 대한 최만린의 관심은 1968년부터 시작된 <心>, <像>, <陰>, <陽>, <氣>, <生> 같은 작품에서도 지속된다. 이 작품들은 문자 형태에서 탈피하여 더욱 추상화된 형상으로 나아갔으며, 이어 등장하는 ‘日月’ 연작에서도 해나 달이 직접 형상화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작가에게 天地나 日月, 陰陽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한 근원적 생명성으로 파악되었음을 말해준다. 최만린이 가장 즐겨 사용한 재료가 흙이었다는 사실 역시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성에 대한 탐색의 결과일 것이다.
근원적인 것과 모필의 생명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970년대에 등장하는 <雅> 연작과 <胎> 연작, 그리고 1980년대에 시작되는 <點> 연작과 <0>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 중 철 용접으로 제작된 <아>의 경우, 조형적으로 모필과 거리가 있고 철을 용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1950~60년대에 우리나라 조각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철 용접조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고철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서 철의 거친 질감을 강조한 전후의 철 용접조각과 달리, 최만린은 철을 한땀 한땀 녹여서 공간에 형상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작가 자신이 “동양의 서화에 쓰는 필묵용법과 같이 재료(鐵棒)와 방법(용접)의 실험으로 새로운 기법에 의한 조형작업”이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 <아> 연작은 흡사 먹을 갈아서 붓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듯이 제작되었으며,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1975~77년 사이에 제작된 드로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철과 대결하듯이 작가의 감정을 실어 철의 물성을 강조하던 전후의 작가들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최만린은 철의 물성을 드러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문자 그대로 ‘맑은’ 상태의 정제된 형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재료의 물성마저도 제거하려는 작가의 의지는 이후로도 지속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형태를 추구하기 위해 일생동안 나무나 화강암 같이 재료의 물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재료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胎>와 <點>에 이어 등장하는 <0>이라는 제목은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가장 순수하고 핵심적인 요소를 정제해 나간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태> 연작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 같은 에너지의 표현마저 제거된 <점> 연작을 거쳐, <0> 연작에 이르면 더 이상 비울 것이 없는, 최고의 정제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최만린이 1980년대 후반에 <0>이라는 컨셉으로 작품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작업을 지속하는 것도 ‘0’은 더 이상 비울 것이 없는, 가장 순수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0’은 문자 그대로는 zero, 즉 無의 상태지만, 동양적 개념에서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상태, 다시 말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이기도 하다.

III.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 지 60년이 지난 올해, 최만린은 팔순을 앞두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한국 근현대미술가들 중에 60여 년 동안 창작활동을 지속했던 미술가는 흔치 않다. 특히 조각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작업에 몰두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오랜 시간동안 미술가로서의 연륜을 쌓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최만린을 평가할 수는 없다. 자신은 특별한 취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조각 이외의 어떠한 것에도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작품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평생 창작이라는 외로운 길을 걸어온 최만린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완벽성을 추구해온 작가다.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그룹이나 단체들이 명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처럼 화랑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개인전을 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미술단체나 그룹활동이었다. 이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며 사회참여를 하기도 하고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의 근거지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동년배 작가들이 반국전을 선언하고 기성세대를 거부하면서 전위적인 미술을 표방하던 시절에도 최만린은 오로지 자신의 작품세계에만 몰두했다. 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내면만을 응시한 채 작품 활동에 몰입한 결과, 그의 작품세계는 단절 없이 일관된 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실 그의 미술세계를 동시대의 세계미술사조는 물론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흐름에 속한 특정 미술사조 안에도 편입시키기가 어렵다. 최만린이 창작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 후반에는 앵포르멜 미술이 유행했고, 1960년대에는 기하추상이나 실험적인 미술이, 1970년대에는 외부에서 유입된 모노하나 미니멀리즘의 영향 하에서 모더니즘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행과 함께 다양한 미술들이 명멸했지만, 최만린의 작품은 그 중 어떤 미술사조로도 규정하기 어렵다. 그는 항상 전위적인 미술계와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왜” 이러한 미술들이 필요한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숙고했다.
최만린은 분명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작가이다. 작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1960년대에 커다란 화두로 대두된 ‘한국성’ 내지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 위치해 있었다. 서구를 의식적으로 초극하려고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서구적인 조형언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당시 많은 작가들이 서구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다가 갑자기 논리적 근거가 희박한 상태로 전통적 요소를 작품에 도입하려 했던 것과는 달랐다. 서예를 자기화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을 모색하고 탐구함으로써, 또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자기 정체성 찾기를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0> 연작에 이르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자신만의 완벽한 언어를 완성하기까지는 수많은 연습과 고심의 시간과 치열한 몸부림이 있었으며, 그의 수많은 드로잉들은 이를 반증한다. 조각과 드로잉이 어우러진 최만린의 이번 전시는 순수하고 원초적인 생명성을 응축해나간 작가의 지난한 창작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이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부교수



Choi Man Lin - Distillations of Life Sculpted Independent of the Times

I.

“I sculpted the resonance of the heart through capturing the waves of breath of nature and life in clay.” (Choi Man Lin)

A 60-year span of the art of Choi Man Lin (崔滿麟, b. 1935) is crystalized in the quotation above. Like a line from a lyric poem, the quote succinctly captures his creative ethos and aesthetic, which refuse both surface decoration and materiality, aspiring rather to express the most basic and fundamental life force. Choi Man Lin first appeared on the Korean art scene at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in 1949. Though selected for the exhibition as a 15-year-old boy, critics agree that his actual artistic career began upon entrance to art college in 1954. Thus, the 2014 exhibition Choi Man Lin: A Retrospective at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marks a significant 60-year anniversary of his work. As many critics and art historians have argued, his works can be discussed according to the evolution of their formal characteristics, from the Eve series of the late 1950s to the recent O series first appearing in the late 1980s. Accordingly, the retrospective offers a comprehensive sweep of such changes. This accompanying article describes the art of Choi Man Lin with a focus on the artistic vision and theme consistent throughout both his sculpture and his drawings. In his work, Choi undertakes to reveal the life energy of living organisms, and to discover hidden life energy from invisible sources. As Choi himself explains, his artistic trajectory involves the ways in which nature, life and mind correspond with one another, as well as ways in which the fundamental and basic energy of life may be visualized. Choi Man Lin’s artistic trajectory will be examined here.

II.

Entering art college in 1954, Choi Man Lin was introduced to the aesthetic vocabulary of Western sculpture, with its emphasis on the human form. During his post-graduate study, he was exposed to Art Informel, another Western aesthetic vocabulary of the time. His Eve series then introduced Choi to the art world, its title not so much a reference to the Western notion of original sin as a general signifier for human beings. At a glance, the series seems to reflect influences from those two aesthetic vocabularies, incorporating elements of both the human form and Art Informel. In the Eve series, the human figure with a small face and thin limbs is reminiscent of post-war European expressions under the influence of existentialism, and the rough surfaces of the pieces can be read as an aesthetic feature of Art Informel. However,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Choi Man Lin directly experienced in his adolescence the horror of the Korean War, which may have rendered the European context of existentialism somewhat luxurious by contrast. Indeed, the Eve series arose from Choi’s horrific firsthand experience of the tragedy of war. Evidence can be seen in Eve 58, where a woman holding not flowers but a thorn bush presents a contrast to the beauty and decorativeness of the human body which is frequently represented by the female nude. The piece can be interpreted as a signifier of the pain inscribed in the minds of a generation following the Korean War. However, Choi Man Lin refused in his work to privilege the emotional anguish instilled by the war. Instead, he attempted to voice vitality overcoming such pain. Thus, he is clearly distinct from the Korean artists of Art Informel who benefited from post-war art in the West. Choi submitted works on the theme of mother and child to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in 1956 and 1957, each piece exemplifying his expressions of vitality. In such work, Choi Man Lin demonstrated his vigorous affirmation of life in the tragic post-war environment.
Around 1965, applying new methodology, Choi Man Lin attempted to express vitality on a more macroscopic level. Discarding figurative aspects of the Eve series, he moved into abstract works in order to reveal the vitality intrinsic to the principles of the universe. In relation to expressions of vitality, one might be reminded of the concept of vitalism in contemporary Western sculpture as discussed by Herbert Read. According to Read, vitalism refers to the expression of natural life energy through organic forms. In his own work, Choi Man Lin attempted to express vitality as a generative energy at the origin of all matter, intrinsic not only to nature but also to the invisible aspects of reality. Finding that such a generative energy could not be visualized on the first attempt, Choi gradually developed his expressions of this vitality through incessant questions and contemplations regarding its origin. His arduous efforts in this direction are evident in his numerous drawings. Chronicling formal changes of his sculptures, Choi’s drawings demonstrate his efforts to coalesce aesthetic forms in his mind before attempting to translate those ideas into tangible materials. There are about 500 such drawings. As this exhibition displays examples of those drawings alongside his sculpture, the audience may easily grasp how Choi Man Lin has distilled his creative ideas into concrete forms.
The first steps of Choi Man Lin’s abstract sculpture moving away from figurative work are in the four Chinese character series of Sky, Earth, Black, and Yellow. His work using Chinese character styles began in 1965, and it served as an opportunity to move completely away from previous works that referenced the human form. Nonetheless, this shift does not mean that an understanding of Choi’s direction can be reduced to simply a shift from figurative to abstract art. At the time, Choi Man Lin began to perceive everything completely anew. According to Choi’s own recollection, at that time he “sought Korea’s own methodology of art, in service of our own identity, a methodology which could be autogenous and take firm root, because the Western aesthetics could not be my own.” Therefore, he deeply contemplated both his own identity and that of his art. Of course, such issues of identity were shared by his contemporaneous artists. Although immediately after the Korean War young artists blindly followed Western influences, they changed their direction toward “Korean-ness” in the mid-1960s. As such, they evinced the artistic demand of the time to find and build an identity either by compromising Eastern philosophy with Western formal vocabulary, or by expressing Korean-ness through traditional and regional motifs or Korean formal elements such as an idea from Eastern philosophy wherein five colors represent directions (blue for east, white for west, red for south, black for north, and yellow for the center). Such phenomena continued in the 1970s, and were collectively understood as “Korean Modernism” or “Korean Minimalism.” However, Choi Man Lin did not directly participate in such trends. This is reflected in the fact that he remained neutral when young artists stood against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in the late 1950s. Thus, he was not swept away by contemporaneous trends, and consistently sought both his own artistic identity and the Korean cultural identity.
The sculpture series of Sky, Earth, Black, and Yellow using Chinese character forms represented the first step of this identity search. For this series, Choi Man Lin discarded the pens and pencils he had used for previous drawings, and chose instead a traditional brush. Although he had not particularly liked to do traditional calligraphy before, at the time of these new series he seemed fascinated not only by the unique beauty of calligraphy, but also by the expressive potential inherent in a traditional brush to capture the energy and breath of a calligrapher. Indeed, there are many contemporary artists who, like Choi, discovered such expressive potential. These include the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painter Franz Kline (1910-1962), as well as Korean painters such as Lee Ungno (1904-1989) and Nam Gwan (1911-1990), who mined calligraphy as a source for their own abstract works. Although Choi Man Lin’s series of Sky, Earth, Black, and Yellow might seem similar to the works of these other artists in terms of its application of calligraphic styles, Choi’s interest is not so much the forms per se as the traditional brush itself. For Choi, the brush was the appropriate tool to express condensed energy and flow, and to echo the breath of life that was difficult to capture using Western tools such as the pen and pencil. Furthermore, for Choi, the brush was the tool to elicit one’s own most natural state and most basic nature.
Choi Man Lin’s interest in vitality as expressed through a traditional brush continued in the six series of Mind, Figure, Yin, Yang, Energy), and Life, which began in 1968. These series broke from the calligraphic styles of the Chinese characters on which they were based, and evolved to further abstract forms. This trend toward abstraction continued in the two subsequent series of Sun and Moon. This search for an appropriate language of abstract sculpture reflects that Choi understood the sky, earth, sun, moon, yin and yang as the original vitality which existed before humanity. The fact that his most preferred material for these series was clay (earth) also tells us that his works were the results of his explorations of fundamental and basic vitality.
This interest in origins and in the brush as embedded with vitality also continued in the four series of Grace and Placenta (both appearing in the 1970s) and Dot and O (each beginning in the 1980s). The Grace series, produced in welded iron, is reminiscent of other welded iron sculpture which was very popular among the 1950s and 1960s Korean sculptors. While typical postwar welded iron sculpture emphasized rough texture by irregularly connecting scrap iron, Choi Man Lin created his welded works by accreting droplets of liquid iron. Although the Grace series is formalistically different from his previous series inspired by the traditional brush, Choi recalled the A series as “works created by a new technique using materials and welding experimentally, in the fashion of the traditional brush and ink used for calligraphy and painting in the East.” In this way, he produced the Grace series as if he were rubbing an ink stick on an inkstone, and as if he were creating calligraphy or paintings with a brush. Choi’s intent in this regard can also be seen in his drawings of 1975-77. Thus, the Grace series is different from welded works by the Korean postwar sculptors who emphasized the materiality of iron by loading it with their emotions as if they fought against the iron. By contrast, Choi Man Lin did not foreground the materiality of iron, and attempted to produce refined forms of the purest state, void of superfluousness. His intention to remove even materiality itself persisted after the creative act. In this light, it is noteworthy that he never chose wood or granite for his sculptures, which strongly show their own materiality, since Choi pursued clear and refined forms.
Appearing after the Placenta and Dot series, the O series, even in its title, underscores the process of refinement by which Choi removed superfluous elements and extracted the purest and most fundamental aspects of his work. While the Placenta series included expressions of energy such as heartbeats, the Dot series removed such expressions. Then, the O series demonstrated that most refined state where nothing yet remains to be eliminated. Choi Man Lin began producing works with the “O” concept in the late 1980s, and he has continued to do work in the O series to the present. Perhaps this is because “O” represents the purest condition, void of anything unnecessary. Literally, “O” is zero, the state of nothingness. However, in Eastern philosophy, complete void or emptiness is also equated with the purest state, which can embrace something new, and which is charged with the possibility to conceive a new life.

III.

As of 2014, since entering college and embarking on his artistic career, Choi Man Lin has produced art spanning 60 years. Choi will be soon 80. Unlike Choi, few contemporary artists in Korea are able to work productively for 60 years. Particularly considering the specificity of the medium of sculpture, it is extremely difficult to continually devote oneself to creation. However, Choi Man Lin will not be valued solely because he is an experienced sculptor of enduring tenure. Although Choi has humbly claimed that his long career has been possible simply because he did not have anything better to do, such a modest statement should not mislead us. Never looking elsewhere, Choi has truly dedicated all his time and energy exclusively to his art. With stubborn tenacity, Choi Man Lin has constantly challenged himself, pursuing perfectionism on the lonely path of art throughout his life.
In the history of Korean contemporary art, numerous art groups and movements have emerged and disappeared. This volatility was especially prevalent in the past. It is not surprising, then, to consider that in earlier years there were not so many galleries as there are these days, and thus it was very difficult to have a solo exhibition. Therefore, the only way for an artist to show works was through participation in art groups and movements. As such, artists often shared a certain ideology, and pursued social activism. Artists would form groups and use those groups as the base of their activities. However, when his contemporaneous artists proclaimed their dissent from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showed irreverence for the older generation, and advocated avant-garde art, Choi Man Lin stayed away from such group activities and devoted himself solely to his works. This is because Choi believed that art belonged to an extremely private and spiritual domain. Because Choi Man Lin looked inward and immersed himself in art regardless of his circumstance, he was able to establish a seamless and coherent context in his work.
Perhaps because of this, it is difficult to place his art in the context of either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movements or that of Korean contemporary art. When Choi Man Lin began his artistic career in the 1950s, Art Informel was popular. Geometric abstraction and experimental arts followed in the 1960s. Modernism was formed under the foreign influence of Mono-ha, and Minimalism arose in the 1970s. Afterwards, various art movements flickered in and out of favor, paralleling the popularity of post-modern discourses. However, the works of Choi Man Lin are difficult to place within any of those movements. Choi Man Lin has always stood a step removed from the avant-garde art groups, and deeply contemplated why such movements were necessary and what they meant.
Choi Man Lin is indeed an artist we cannot forget if we wish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Korean contemporary art. Although he may not necessarily have intended it, Choi participates in the larger flow of “Korean-ness” or the “modernizing tradition” which rose to importance in the 1960s. Although Choi did not necessarily overcome the artistic influences of the West consciously, it is clear that he strove to forge his own path from the aesthetic vocabulary of the West. Choi’s efforts have differed from those of many of his contemporaries, who actively embraced Western art, and only later abruptly incorporated traditional Korean elements using weak rationales. As seen in the way he assimilated traditional calligraphic styles into his own work, Choi Man Lin built his distinctive art through a constant search for his own unique methods as well as through constant self-introspection and a search for identity.
As can be seen in how he arrived at the O series, countless hours of painstaking practice and intense inner struggle have been necessary in order for Choi to complete a perfect vocabulary of his own. Choi’s drawings closely chronicle this progress toward a personal vocabulary. Presenting Choi Man Lin’s sculptures along with his drawings, this exhibition will serve as an extraordinary opportunity to look in detail at the arduous creations of the artist who condensed the pure and basic energy of life.

Kim Yisoon, Hongik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Fine Arts, associate profes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