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 - 波動

CHEON KWANG YUP

2016-03-01 - 2016-03-30

천광엽 - ‘최소한의 개입’에 의한 역설의 미학

Ⅰ.
최근에 등장한 한국 미술계의 최대 이슈로는 단색화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는 중이다. 허핑턴 포스트 최신호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단색화, 한국의 미니멀 회화 운동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표현하면서 최근 들어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단색화 현상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L.A 소재 블럼 앤 포 갤러리가 주최한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전] 에 관한 한 리뷰 기사는 서구의 미술계가 한국의 단색화를 바라보는 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의 단색화 작품과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품이 개념적으로는 유사해 보이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이 끊임없는 육체적 수행을 통해 정신적 접근을 꾀하는 반면, 미국의 미니멀리스트들은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파생되는 지각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의 단색화 일반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령 8.15 해방과 한국동란 등 한국 근현대사를 이루는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한 단색화 작가들의 내면세계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현재 70-80대의 연령에 해당하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 작품의 바탕에 흐르는 유교적 전통, 가령 ‘수신(修身)’의 내면화가 곧 단색화 특유의 정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금욕적인 색의 사용은 표현의 절제는 물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표상되는 자기 부정과 결부된다.

Ⅱ.
천광엽은 한국의 ‘후기 단색화(Post Dansaekhwa)’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2012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한 [단색화전] 에 초대를 받은 바 있는 그는 특유의 금욕적이며 절제된 미감에 의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화면을 창출한다.
1958년생인 천광엽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맥락에서 볼 때 모더니즘 미술교육을 받은 세대에 속한다. 말하자면 현재 70-80대에 이른 단색화 작가들의 제자 세대인 것이다. 그는 한국이 ‘산업입국’을 국시(國是)로 삼아 한창 경제 개발에 열을 올리던 70년대 말엽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모더니즘 시기를 겪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근대화를 근간으로 한 산업진흥정책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연이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행은 그러한 목표를 가능케 했다. 이 시기 군부 통치로 인한 인권 탄압과 경제 번영이라는 양날의 칼은 남북 분단의 상황과 맞물려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각종 분열과 갈등을 낳는 요인이 되었다.
천광엽이 미술대학에 입학을 한 1970년대 후반의 화단 상황은 서구에서 유입된 모더니즘이 지배적인 주류로 부상되고 있었다. 이 운동을 추동한 세대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단색화 작가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미술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한편, 일부는 국제전 참여작가 선발권을 쥔 한국미술협회를 중심으로 화단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70년대의 단색화는 그런 상황에서 세력의 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천광엽과 같은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미적 특질은 유교문화의 소산인 단색화 작가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오늘날 80대의 노경에 이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검출되는 미적 특질이 정신성(spirit), 촉각성(tactility), 수행성(performance)이라고 한다면 , 천광엽과 같은 후기 단색화 작가들의 미적 특질은 매우 다양해서 공통적인 면모를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후기 단색화 작가들 세대에 이르면 한국의 근대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적 윤리가 해체되며, 자유와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이념과 가치가 교육을 통해 범사회적으로 확산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광엽이 대학시절을 보낸 70년대 후반은 공업화로 인한 이농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변동이 나타난 시기였다. 이 무렵에는 서울의 급속한 인구 팽창과 함께 아파트의 건설, 백화점이나 연쇄점, 수퍼 마켓의 등장으로 인한 소비문화의 형성 등 모더니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있었다. 따라서 후기 단색화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산업재료나 공업용 도료의 사용은 그 내용면에서 단색화 작가들과 차별화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Ⅲ.
천광엽의 작업은 표면 질감에 대한 추구가 요체를 이룬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초반에 모습을 보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맨 처음 착안한 것은 점(dot)이었다. 점자를 연상시키는, 균질한 캔버스 표면에 때로는 균일하게, 때로는 불규칙한 형태로 자리잡은 일정한 크기의 점들은 이차원 평면인 캔버스의 존재론적 조건에 부합한다. 그것들은 평평한 캔버스의 물리적 바탕 위에 밀착됨으로써 평면성을 강조하게 된다.
천광엽은 컴퓨터에 의해 도안된 후 타공된 시트지를 캔버스 표면에 부착, 이를 유성물감으로 칠하고 표면을 연마하여 얻어지는 반복작용을 통해 초기작업에 나타난 점의 요철(凹凸) 효과를 드러냈다. 90년대 초반의 초기 작업에서 그가 시도한 것은 모듈에 근거한 균질한 점의 배열이었으나, 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점자책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산포(散布)된 점의 배열을 통해 기호화를 꾀하게 된다.
회화 평면이 지닌 ‘즉물적(literal)’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는 천광엽의 그림은 이처럼 점이 진화한 결과이다. 90년대 초반 이후 그는 촉각과 시각 사이를 왕래하면서 지각의 문제를 심도있게 천착해 왔다. 그러한 그의 실험은 화면에서 요철을 이룬, 점이 야기하는 촉각과 시각 간의 혼돈된 지점, 즉 인간의 지각이 지닌 한계나 난점에 대한 실험이다. 그것은 또한 동시에 긴 회화(繪畫)의 역사를 이루는 이미지와 실재(實在)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물리적 사물로서의, 아주 미세하게 돌출되거나 함몰된 점들은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환영(illusion)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초기의 실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평면적으로 치닫게 된다. 캔버스 바탕을 넓은 붓으로 수차례 정도 정교하게 칠하고 샌드페이퍼로 갈아내는 반복 작업을 거친 그의 화면은 특유의 몸성(몸性:Mom-sung)을 획득한다. 넓고 평평한 붓으로 칠하고 샌드 페이퍼로 갈아내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캔버스 평면 위에 형성된 물감의 층들(layers) 은 유광의 경우 아른거리는 시각적 잔상 효과를 낳기도 한다.
Ⅳ.
빛이 나는 것과 빛이 나지 않는 것, 거친 것과 조밀한 것, 매끈거리는 것과 광택이 없는 것 등 다양한 질감에 대한 어사(語辭)는 천광엽의 그림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들이다. 이는 그가 자신에 붙인 명제들처럼 그의 그림을 독해하는데 필요한 참조물 이 되어준다. 가령, <마음의 왜곡(Mind Distortion)>, <묵언(Speechless)>, <입항(Port of Entry)>과 같은 명제들은 작품의 실제 내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건조한 느낌, 즉 생명없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즉물적으로 표출하는 일은 천광엽이 자기 작업의 요체로 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연한 베이지 색 위주의 초기 작업부터 적, 청, 녹, 회색, 핑크 계열의 연한 중성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천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알루미늄 판위에 우레탄 도료를 사용해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은 ‘최소한의 개입’을 모토로 작업을 하는 천광엽 작업의 핵심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는 하나의 작업에 투여되는 엄청난 시간의 총량이 하나의 작품으로 종결되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객관화된 ‘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비로소 하나의 ‘사물(objet)’로 존재하게 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천광엽의 미니멀한 단색화 작품들은 컴퓨터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과정에 의해 탄생된다. 이는 90년대 초반의 ‘점(dot)’의 시기 이후에 일관된 제작 방식이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초기의 작업에 나타난 붓질 회화가 이천년대 이후 스프레이 도포 방식으로 바뀌는 정도이다. 그러나 불포화성 수지를 비롯한 유광 미디엄을 사용하면서부터, 작업 방식에서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그의 모토는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부드러운 점성을 지닌 불포화성 수지의 액체가 알루미늄 판 위로 서서히 퍼져나가 마치 피아노의 반질거리는 표면과 같은 느낌을 형성하고,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에 의해 드로잉된 정교한 선들이 알루미늄 판위에서 격자 형태의 무늬를 이룰 때, 완성된 작품이 주는 느낌은 얼핏 차갑고 건조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은 따뜻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역설의 미학은 그의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Ⅴ.
천광엽이 이번 전시에 붙인 타이틀은 이다. 아마도 오랜 사고와 작업의 수련 끝에 나온 이 타이틀만큼 그의 근작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업방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천광엽의 근작은 유성물감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캔버스에 부착된 점(dot)들을 점(dot)들의 표면을 연마하는 고된 노동의 산물이다. 천광엽은 일련의 공정을 거쳐 캔버스에 옮겨진 점들을 샌드페이퍼로 연마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연속적인 기다림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사용하는 유성물감은 건조가 느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반복적인 과정이 개입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원하는 캔버스 표면의 두께가 나올 때까지 이 지루한 동작은 반복된다.
천광엽은 이 힘든 노동을 즐긴다. 그것을 일러 그는 ‘엄숙한 과정’이라고 까지 부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일종의 초월의 상태가 아닐까? 이것은 어쩌면 서양의 전위음악이나 전위무용의 창작원리가 된 ‘비결정성’과도 상통하는 것이며, 한국의 전통 축성술에서 볼 수 있는 석공의 자기초월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노동은) 고통이지만 충분히 즐길 만한 희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과가 주어지니까요. 저는 예술이 아름다운 이유는 결과를, 끝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끝을 안다면 굳이 왜 하겠습니까? 결과의 불확실성, 건조에 시간이 축적되는 오일 물감의 비완결성, 이런 거에 미치게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불확실성, 비완결성, 비결정성, 자기초월성과 같은 포스트모던적 어사들이 리좀(rhizome)을 연상시키는 무지향성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천광엽의 작업은 그러한 세계를 지향하며 그의 말을 빌면, “가보지 못한 어떤 미지의 공간이 담고 있는 비전을 추구”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몸성’을 느끼고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천광엽의 그림은 회화를 회화이게끔 하는 존재론적 조건의 극단에 서 있다. 그것은 회화가 다름 아닌 이차원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정의를 용인하면서 회화의 지평을 넓혀가려는 사고의 산물이다.

“그의 작업은 화면으로부터 일체의 이미지를 배제함으로써 오로지 화면의 내적 질서만을 추구하게 된 모더니즘의 본질에 접근함으로써 화면에서의 ‘순수성’을 획득한다. 그의 화면에서 보이는 중성성(neutrality)과 화면의 평면성, 물감의 물질성 등은 어떠한 이미지의 연상도 차단함으로써 회화의 순수한 지각적 체험을 유발시킨다.”

위 글은 오래 전에 쓴 천광엽의 개인전 서문에서 한 구절을 옮긴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렸다. 삼라만상이 변하듯 그동안 천광엽의 작품세계도 많이 변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의 깊어진 연륜 만큼이나 폭넓은 회화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그의 비옥한 회화적 지평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이제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다.

윤진섭(미술평론가/시드니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