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원 • 최병소 2인전 / 최병소

Park Ki Won • Choi Byung So

2017-10-16 - 2017-11-25

최병소 - 소멸하며 태어나다

1. 한 장의 신문지로부터
한 장의 신문지가 놓여 있다.
남자는 신문을 ‘읽는’ 대신 잠잠히 바라보다가 볼펜으로 그 위에 빽빽하게 일직선을 긋기 시작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암흑 속으로 검은 활자들이 하나 둘 숨겨지고 지워지며 흰 여백조차 모두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는 말없이 연필을 손에 쥐고 그 위에 다시 선을 긋기 시작한다. 검은 흑연이 검은 볼펜 잉크를 완전히 덮다 못해 거의 헤진 걸레처럼 될 때까지 집요하면서도 초연하게.
또 한 장의 신문지가 있다.
남자는 신문 활자들의 전해주는 내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채 무심히 그 위에 검은 먹을 칠한다. 먹칠로 두께감을 갖게 된 신문지는 또다시 무수한 연필의 선들로 그어지고 그어져 흑연 덩어리가 된 채 봉투로 만들어진다.

2. 서구 모더니즘 담론의 뜨거운 이슈들
한 남자가 어느 날 선택한 신문지는 얇고 평평했다. 그러나 평평한 듯이 보였던 신문지는 무수한 볼펜 선과 먹물을 먹은 뒤 그어진 연필 선으로 인해 어느덧 기묘하게도 납작하게 눌린 흑연 덩어리가 되어 강렬하게 스스로의 물질성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 익명의 신문지는 이미 날짜와 보도기사를 모두 삭제 당해 레디메이드 예술로서의 위상도 상실했으며 사회성도 잃었다. 아마 남자 자신마저 신문지에 적힌 날짜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기억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으리라. 중요했다면 기억하거나 적어놓았을 테니까. 아무튼 이제 그것은 자신의 존재성의 원천을 잃고 더 이상 평평하게 보이지도 않을 만큼 너덜너덜한 검은 물질이 된 채 찢긴 시체처럼 누워있다. 그런데 그 주검이 냉혹하리만치 끝없이 반복되었던 남자의 손길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처연한 숭고함마저 내뿜는 까닭은 무엇일까?
2차원 회화의 평면성과 3차원 물질성의 문제, 레디메이드와 창조의 문제, 영원불변한 걸작(Masterpiece)과 1회적 행위성, 그리고 키치(Kitsch)와 예술적 숭고함의 문제는 모두 서구 모더니즘 담론의 뜨거운 이슈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점진적이고 변증적 과정을 거쳤던 서구의 모더니즘 논쟁들은 또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와 뒤섞이며 소화된 뒤 배설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3세계의 작가들을 또 다른 문화 예술 형태로 자라게 해 왔다. 그것이 문화 차용(Cultural Appropriation)의 식이요법 과정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한 남자가 신문지에 집요하게 선을 긋는 행위와 그것이 낳은 검은 물질의 의미들을 서구 모더니즘 논쟁에서 직접 잉태된 담론들에 재적용하는 일이란, 먹기 전의 음식물 형태와 맛과 냄새를 이미 소화된 배설물에서 재확인하려는 것과 같지 않은가.
문화 예술의 차용이란 섭취되는 음식물이 소화되고 배설되는 과정과 같으며, 그 양분으로 자라는 것은 ‘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면성과 물질성, 레디메이드와 행위, 긋기와 지우기, 그리고 숭고함을 작업 과정 중에 혼용하고 뒤섞으며 새로운 양태로 태어나곤 했던 한 남자의 고독한 작업은 한국에서 백색과 관련된 ‘모노크롬 회화(Monochrome Painting)’라고 불려왔을 뿐인 것 같다. 하나(Mono)의 색깔(Chrome)을 집중적으로 의미하는 서구의 담론적 언어로.

3. 1970년대 한국 단색조회화
한동안 한국의 미술계에서는 ‘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린 열풍 현상이 있었다. 예전에는 물론 최근까지도 1970년대에 앞서가는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독자성으로 높이 평가된 미술경향은 ‘모노크롬’이라고 일컬어지곤 했다.1)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1970년대 한국의 미술 경향으로서 ‘모노크롬 회화’ 특히 ‘백색 모노크롬’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불가피하게나마) ‘한국 단색조회화(Monotone Painting)’라고 불러왔다. 그들은 하나의 시각적, 물리적인 색을 강조하는 대신 미묘한 색조(tone)를 드러내며 각각의 정신적인 의미들이 깊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 단색조회화의 시발점은 1975년 일본의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5개의 흰색 白>전이었다고 한다.2) 꽤 애를 쓰며 조사해 보니, 그것은 식민지 시대에 조선을 가엽게 여기며 사랑했다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시각과 용어가 한국 미술계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다시피 했던 기원이 있었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난 1970년대 일본의 비평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2년가량이나 준비하고 한국에 와서 탐색을 한 뒤 발견한 것이 또 다시 ‘한국의 흰색’이었다.3) 애초에 그 전시 취지는 일본인들이 조선 백자에 대한 호감으로부터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발견하고자 했던 것처럼 ‘흰색’의 의미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계속되는 일본인들의 관심에 힘입어 2년 후 다시 도쿄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4)은 조각과 회화 등 다양한 작가와 경향을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5년의 도쿄화랑 전시에 이어 소위 한국인의 고유 미의식을 표방하는 ‘흰색’에 대해 조명했던 ‘제 2탄’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리고 1977년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에서 신문지로부터 검게 찢긴 물질(그림2)을 고독하게 탄생시키던 남자는 ‘백색 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린 회오리 열풍 속에서 말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4. 평면성물질성의 모더니즘 담론과 사회
1960-1970년대 신문지라는 레디메이드로 미술담론을 형성했던 작가 몇몇을 알고 있다.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에 집중되었던 서구의 담론에서 3차원 세계에서 2차원 평면이란 가설일 뿐이라는 사실이 자각된 이후,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작가인 루치아노 파브로(Luciano Fabro)가 바닥에 깔은 신문지(1967), 교토시미술관(京都美術館)의 <컨텍스트전>(Context exhibition)(1972)에 신문지를 깔아 놓았던 일본작가 가네자키 히로시(金崎博), 전시 기간동안 신문지의 기사 부분을 오려 여백 부분과 따로 쌓아놓았던(1974) 한국의 성능경 등이 떠오른다. 모두 문맥은 다르지만 평면성과 물질성의 문제 사이를 오가고 있었고, 성능경은 특히 유신시대의 사회에 대한 발언을 담고 있었다.
파브로와 가네자키가 회화의 평면성 문제로부터 3차원 공간 속의 물질의 문제로 넘어가던 첨예한 모더니즘 담론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문지를 택했다면, 한국의 성능경은 두 칸의 투명 아크릴 박스에 내용을 전달해 주는 활자 부분은 모두 오려서 한쪽에 두서없이 담고 여백과 만화 부분이 남은 신문지는 차곡차곡 다른 한쪽에 담았다. 내겐 그것이 유신시대, 사회적 언어의 무의미함으로 비쳤고 작가는 내게 “역사의 현장에 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1970년대 겨울 공화국 한국에서 한 남자가 빼곡히 볼펜 선을 긋고 다시 연필 선을 한없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어, 도저히 그 바탕이 신문지라는 흔적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행위. 그것은 예술의 사회사적 측면으로 볼 때, 신문의 기사 란을 오려서 구겨버렸던 경우보다 더욱 지독하고 처절한 저항으로 비친다.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신문의 의미를 완전하게 말소하여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또한 그것은 모더니즘 이후 조형사적 측면으로 볼 때, 레디메이드로서의 평평한 신문지를 더 이상 2차원 평면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이미 물질로서의 신문지에 더욱 물질성을 부과하고 강조하는 행위로 진행하는 셈이다.
이중구조. 그 하나는 1970년대 자신이 처한 유신 공화국의 사회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언어 소통을 무화(無化)시킴으로써 고독하게 벌인 침묵의 시위이다. 또 하나는 문화 예술의 차용으로부터 소화와 배설 과정을 거쳐 자라는 ‘몸’의 구조로서 서구의 모더니즘 담론의 이슈들을 이 땅에서 혼성화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행위이다.
한 남자의 내적 이중구조는 1970년대 한국의 미술계와 또 하나의 외적 구조망과 중첩된다. 성장과 어둠이 교차했던 시대, 예술의 사회적 발언이 거의 용납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된 채 한국 단색조회화의 아우라는 초월과 노장사상을 표방하며 예술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 외적 구조와 자신의 내적 구조 틈새에서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 채, 무언가 속에서 치받치는 느낌을 억누르는 듯 침묵으로 시위했던 그의 행위가 내포했던 것으로 보이는 의미는 한국 단색조회화의 화려한 외침 가운데 묻혔다. ‘모노크롬 작가’라는 이름으로.

5. 다시
아주 오래된 풍화를 거친 양, 헤질 대로 헤진 채 듬성듬성 낡은 구멍들이 뚫려있는 모습. 매끈한 평면도 아니지만 입체적인 어떤 물체의 모습도 아니다.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고 만져보고 싶으나 이미 여기저기 무너져 내려 살짝 손만 대도 부서질 듯, 사해에서 발견된 기원전 파피루스와 같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또 그것이 예술이라면, 벽에 걸어야 할지 바닥에 놓아야 할지 공중에 매달아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긋고 지운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회화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낡고 구겨진 검은 양철판 같은 그것이 어떻게 회화가 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편 물질이긴 한데 도무지 양감(量感)이 느껴지지 않아 조각처럼 세울 수도 없으니 칼 앙드레(Carl Andre)의 구리판처럼 바닥에 놓아야 하나, 그런 마음도 들지만 발끝만 닿아도 부서질 그것을 전시장 바닥에 작품이라고 놓기도 난처하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너덜너덜한 물질은 한 남자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손으로 작업한 것이다. 싸이 톰블리(Cy Twombly)처럼 몇 번 휘적거린 드로잉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잊을 정도로 몰입되어, 혹은 딴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 결과물이다. 때로는 유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했겠지만 때로는 고통과 울분과 한숨 속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 남자의 삶 속에 녹아서.
1970년대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은 지나간 역사가 되었고, 한국 단색조회화의 아우라 또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았다.
그리고 이제 오랫동안 밀쳐두었던 신문지를 다시 대면하는 한 남자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위에 끝없이 긋고 지우는 행위를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정체를 알기 힘든 허름한 물체를 탄생시키는 그 행위에서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의 아우라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그 자체가 아무도 모를 한 고독한 남자의 오랜 시간들과 영혼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으며 우리의 눈과 정신에 그것은 투명하리만치 맑게 비치기 때문에.
그 남자는 대구에서 살고 있는 작가 최병소다.

김미경(강남대 교수/미술사학)



Choi Byung-So - Birth from disappearance

1. From a page of Newspaper
There is a page of Newspaper.
Instead of ‘reading’ it, he stares at it and starts to fill it with straight lines with a ball point pen, until all the letters and even the white space disappearance in to endless darkness. And again, without a word, he grabs his pencil and starts to draw more lines. Black graphite covers the ink with his ceaseless motion until the paper more or less resembles a rag.
There is another page of Newspaper.
Without any thought to the meanings of the words in the page he paints the page with Chinese ink. It becomes a block of graphite and is made into an envelope.

2. Hot issues in Discourse of Western Modernism
One day a man chooses a flat and thin Newspaper. However, this flat Newspaper is strangely transformed into pressed graphite block after countless pencil strokes on top of innumerable ball point pen lines and Chinese ink. The paper starts to emit its nature of material strongly.
This unnamed newspaper already deleted all the weather information and report and in turn, lost its ready-made art value as well as social values. Probably even the artist would not remember, the date and the reports on the newspaper and most likely doesn’t feel the need to remember. If it was important he would have written it down somewhere. The paper no longer possesses the original function of itself and is no longer flat but tattered black material laid down like a corpse. But how does this corpse like material emit the sorrow and innocence of the man’s each stroke?
Flatness of two-dimensional painting and three-dimensional nature of material, ready-made and creativity, immortal masterpieces and singular action, Kitsch and artistic sublimity are all hot issues in discourse of Western modernism. However, in the 20th century, controversies in Western modernism undergo progressive and dialectic process, and are passed on to other cultures. The third world artists were able to transform this into another form of art through the process of digestion and excretion. This is the dietary treatment of Cultural Appropriation.
Therefore, taking the meaning of a man persistently drawing lines and the black material from that action in Korea and reapplying to issues conceived from controversies in discourse of western modernism is analogous to reaffirming the taste and smell of food from digested excrement. Cultural Appropriation is similar to process of digestion and excretion of food, and the ‘body’ grows from the nutrients.
Flatness and nature of material, ready-made art and action, stroking and erasing sublimity are jumble together and mixed to give birth to new mode of art. Despite this one man’s lonely process, he has been only recognized as ‘Monochrome Painting’ related to Korean white-color in reference to language used in discourse of western modernism.

3. 1970’s Korean Monochromatic Painting
Korean art world experienced a strong wave of ‘Monochrome painting’ for a good while. In the past, even in recent times, forerunners representing the 1970’s Korean art have been ‘Monochrome’ highly evaluated for its individuality. But, personally I do not used the term ‘Monochrome Painting,’ especially ‘White color Monochrome’ to describe the tendency of 1970’s Korean art, inevitably I have used term ‘Monotone Painting’. Instead of emphasizing the visual or physical impression of color, it expresses subtle color tone connoted with spiritual meanings.
At any rate, Korean Monochromatic Painting is said to have its starting point in Tokyo Gallery in Japan in 1975 during the exhibition of 5 White colors of 5 Korean Artists. After extensive research the origin of this has been found that a man named Yanagi Muneyoshi who pitied Korea during colonial period his aimed to identify Korean art through its visual impression and language and has become a standard. After a half century in 1970s, Japanese art critics and those who are concerned with the exhibition prepared for two years. They visited and explored Korea and discovered once again ‘White color of Korea’. From the start, intention of the exhibition originated from their interest in Korean white porcelain and continuously focused their search to the meaning of ‘white color’.
Once again after two years, there was a second exhibition titled A Facet of Contemporary Korean Art with the help of continuous interest in Japan. Despite inclusion of sculpture, paintings and etc from various artist and trends, it is regarded as the second sequel illuminating the first exhibition which professes ‘white color’ representing Korean traditional aesthetic consciousness. And in 1977 exhibition of A Facet of Contemporary Korean Art, a man who gave lonely birth to black torn material from a newspaper kept silence in the face of whirlwind of ‘White Monochrome Painting’.

4. Flatness, Nature of Material in discourse of Modernism and society
I know several artists in 1960-1970s that formed art discussion from newspaper ready-made.
After awakening from the fact that 2-dimensional flatness can only be hypothesis in 3-dimensional world from the discussion of Western modernism which focused on the flatness of modernism painting, one can come to think of Arte Povera artist Luciano Fabro’s newspaper on foor (1967), Japanese artist Kanejaki Hiroshi who laid down newspaper in Kyoto Art Gallery’s Context exhibition in 1972, and Korean artist Seong, Neung-Gyeong who stacked cut-out newspaper articles during his exhibition in 1974. All these differ in context, but they are all concerned wish flatness and nature of material. Seong, Neung-Gyeong especially, speaks out against the president Park’s renovation era.
If Fabro and Hiroshi chose newspaper during the whirlpool of astute discourse western modernism regarding issue of 3-dimensional nature of material from flatness, Korean artist Seong, Neung-Gyeong took two transparent acrylic boxes and placed contents of newspaper in cut-out articles in a discursive way in one box. And then, he piled up remainder of blank spaces and cartoon section of the newspaper one by one neatly in the other box. To him, his action reflects the meaninglessness of social language during President Park’s renovation era. He told me that “I wanted to in the makings of history.”
In 1970 winter In Republic of Korea, a man completely fills the newspaper with lines with ball point pen and then draws innumerable lines again in pencil until the paper is in rags that strike out all and any evidence that if was once a newspaper. From social history of art point of view, this action reflects much more extreme and ghastly resistance than cutting out newspaper articles and rumpling them. Meaning of newspaper as means of social communication has been completely obliterated and thoroughly ignored by giving another form of existence. Also, looking at it from side of history of art form it implies that ready-made flat newspaper is no longer considered two-dimensional plane. It imposes and emphasized the nature of material of newspaper.
Dual structure. One of them is in 1970s during the historical reality of renovation of republic when he demonstrated against in social communication in Solitude. Another is when he applies cultural appropriation to give birth to new form after the process of digestion, excretion to result growth of ‘body’ from issues of discourse of western modernism.
One man’s inner dual structure reiterates 1970s Korean art and another outward safety net. It was time of growth and darkness intersects each other and when artistic social voice was almost unacceptable and isolated by society. Aura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advocates transcendence and fundamental principles of Lao-tzu, and Chuang-tzu and plays a leading role in the art circle. The sound from the gap between outward structure and inner structure is kept silent. He protests in silence as if he is oppressing something surging within, and the meaning embedded in his silent resistance is buried under brilliant scream of Korean Monotone painting, under the name of ‘monochrome painter’.

5. Again
As if old and weathered, and worn and scattered with holes, it is neither a smooth plane nor shape of solid material of any kind. Curiosity of the material leads one to touch this material only to stop and see that it is already crumbling at places and would fall apart at the touch of a finger. It seems like it’s enshrining long ago history reminiscent of ancient papyrus discovered in the Dead Sea. If it is art, how should it be exhibited, by hanging on the wall or suspending it in the air? There would be people who would like to call this art based on the faint evidence of drawing and erasing, but some would argue in sullen words how this tattered and crumpled black sheet iron-like material could be painting. There is another dilemma; should it be placed on the floor like the copper plate of Carl Andre since it cannot be placed like a sculpture; there is no feel of massiveness. It still feels uneasy about placing it on the floor when a touch of a tip could crumple it to pieces.
This unidentifiable tattered material is made from a one man’s tenacious strokes over a long time. It is not the same as the drawing of CyTwombly’s several swings. This is the product of a man’s engrossment of countless hours of labor perhaps engaged in other thoughts. Now and then he probably felt delighted and comforted by his strokes but sometimes he was driven by pain, pent-up anger and with sighs all fused in one man’s life.
Korean social and political circumstances in 1970s are now part of past history, and the aura of Korean Monotone Paintings also remains as a page in the history. And a man is once again confronting a newspaper and endlessly stroking and erasing after a long hiatus in the name of art. We don’t have to remain ourselves of the aura of past history from the action that gave birth to ragged and unidentifiable material. The material deeply holds the soul of a lonely man and is reflected brilliantly and transparently in our eyes and spirit.
He is Choi, Byung-So and resides in Daegu.

Kim, Mi-Kyung / Professor of Art History from Kangnam Univ.